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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 이후, 삶은 어떻게 변할까
산티아고 순례 이후, 삶은 어떻게 변할까
글쓴이 : 황소걸음   날짜 : 18-11-09 15:10  
조회 : 439
카미노의 많은 순례자는 길 위에서 모험과 고독 사이의 뭔가를 찾는다. 여행을 통한 탐색, 다시 말해 외부의 길을 걸으며 내면의 길을 찾으려 한다. 황소걸음 제공·ⓒ문진웅

- 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 / 낸시 루이즈 프레이 지음, 강대훈 옮김 / 황소걸음

美 문화인류학자 직접체험

산티아고 연구로 박사학위

숙소에서 1년간 자원봉사

수많은 순례자 경험 담아

육체적 고통 속 환희·허탈

삶·생각의 변화 의미 찾기


‘카미노 데 산티아고.’ 우리에게도 ‘산티아고 길’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이 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순례길을 말한다.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 바로 ‘산티아고’다. 목적지는 한곳이지만 순례길의 코스는 여러 가닥이다. 영국 순례자들이 걷던 길인 ‘카미노 잉글레’가 있고, 포르투갈 사람들이 북진하는 길인 ‘카미노 포르투게’가 있으며, 프랑스 순례자들이 걸었던 ‘카미노 프란세스’도 있다. 1000년 동안 무수한 이들이 기독교 순례길인 이 길을 지팡이를 짚으며 걸었다. 지금도 한 해 30만 명이 넘는 여행자가 그 길을 걷는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 길을 걷는 것일까. 어떤 목표와 동기가 있으며, 왜 순례길을 걷기만 하면 애초의 목표는 달성됐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산티아고 길 순례가 사람을 변화시킨다면 그 변화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길을 걷고 난 뒤에 왜 어떤 이는 내면의 변화로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이는 걷기 이전과 똑같은 삶을 반복하는 것일까. 그 모든 해답이 바로 이 책에 있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야기하는 책은 전혀 새롭지 않다. 재방송되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산티아고 길’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된 책만 줄잡아 100여 권에 육박한다. 산티아고 순례가 유행처럼 혹은 로망처럼 소비되면서 책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순례길 정보를 담은 가이드 북부터 그 길을 걷게 된 사연과 완주한 감상까지를 담은 수필이나 여행기까지 책의 내용은 다양했다. 혼자 간 여행기도 있고, 아내와 함께 간 여행기도 있으며, 아홉 살 아들과 길을 걸은 감상을 쓴 책도 있다. 길 위의 성당과 마을을 모아 낸 책도 있고,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책을 써냈지만,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간추려보면 도시에서의 바쁜 생활에 지친 삶과 두 발로 순례 길을 걸으며 받는 위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천편일률적인 데다 도대체 독자들이 왜 그걸 읽어야 하는지 모를 정도의 일기장 같은 수준 미달의 책들도 적잖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새로운 책에 더 이상 눈길이 가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연구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산티아고 길을 여러 번 순례한 그는 순례자 숙소에서 1년 넘게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길에서 만난 수많은 순례자를 인터뷰하고, 유형을 분류하고 행태를 분석한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1800년대 중반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겼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떤 과정을 통해 각광받는 여행지로 부상하게 됐는지, 순례길 걷기가 종교 여행 차원을 벗어나 중산층의 ‘의미 있는 여가’로 받아들여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사람들은 왜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개인적·사회적 목표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방법으로 생각하게 됐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담겨 있다. 더불어 저자는 숙소 운영시스템과 타인과의 교유 방식, 순례자들의 참여과정 등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오랜 걷기의 육체적 고통과 피로가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산티아고 길을 다 걷고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 느끼는 환희와 허탈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분석한 대목도 흥미로웠지만, 이보다 더 눈길이 갔던 곳이 순례길을 다 걷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다. 순례의 경험이 어떻게 사람의 생각과 삶을 바꾸는지에 대해 다양한 이들의 사례를 통해 읽다 보면 문득 그 길을 걷고 싶어지게 될 게 틀림없다. 흥미진진한 여행기도 아니고, 그림 같은 경관 사진도 한 장 없지만, 산티아고 길 순례의 로망을 자극하는 이 책의 유혹은 강력하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을 걸을 기회가 없다 해도 관계없다. 책에 적어둔 옮긴 이의 서문 마지막 문장에 그 이유가 있다. “굳이 순례가 아니더라도 이 책이 살면서 맞닥뜨리는 결정적 경험이나 변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479쪽, 2만 원.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