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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 도구 전락한 개인주의
‘경제적 불평등’ 도구 전락한 개인주의
글쓴이 : 황소걸음   날짜 : 19-02-22 14:07  
조회 : 256
한 사람의 자유나 쌓아 올린 부는 여러 사람의 희생으로 가능하다. 한 사람을 맨 위에 올려놓기 위해 여러 사람이 받쳐주는 카스텔(인간 탑 쌓기)과 유사하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스페인 카탈루냐 축제에서 카스텔 경연 모습. AP·연합뉴스

- 개인주의 신화 / 피터 칼레로 지음, 김민수 옮김 / 황소걸음

자본주의 경제논리에 이용당해

모든 문제의 원인 개인서 찾아

미국인 63% “출세못하는 흑인

스스로에게 그 원인이 있는것”

“개인의 존엄성·자유 제한하는

사회적 힘 걸러내고 연대해야”




미국 시카고 태생의 테드 카진스키는 20세에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25세인 1967년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바로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조교수 자리를 얻은 수학·과학 영재였다. 그런 그가 2년 만에 대학을 떠나 주변을 놀라게 하더니, 1971년 로키산맥 아래 외딴곳에 오두막을 짓고 들어가 세상에서 잊혔다. 그는 1996년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오두막에서 체포되기까지 16년간 17차례나 사제폭탄을 우편발송해 3명의 사망자와 23명의 중상자를 낸 ‘묻지 마 킬러’로 전 세계 언론에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성공에 대한 가족의 압박이 그를 정신이상으로 만들었다는 등의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웨스턴오리건대 사회학자인 이 책의 저자는 ‘급진적 개인주의’의 삶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평가한다. 다소 억측처럼 들리지만, 저자는 미국 사회의 핵심적이고 지배적인 특징인 개인주의의 폐해를 책에서 나열하면서, ‘카진스키’는 개인을 통해 표출된 하나의 극단적 사례라고 말한다.

흔히 우리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에 대해 그다지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독립과 자립, 자유와 사생활이라는 가치관은 우리가 부러워하며 쫓아가는 ‘선진 대국’인 미국인의 가치가 아닌가.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가치관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고, 정도를 넘어서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같은 양상은 일반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개인의 진정한 자아는 태어날 때부터 유일무이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독립적이며, 어떤 형태든 사회는 우리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영화나 TV 등 대중문화는 하나같이 모든 역경을 딛고 자기 힘으로 성공한 사람,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한 사람에게 찬사와 축하를 보낸다. 저자는 널리 퍼진 이 같은 생각이 강력한 문화적 신화, 즉 개인주의 신화라는 증거라고 단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개인주의는 집단보다 개인의 특권을, 공적인 것보다 사적인 것을, 사회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신념체계다. 저자는 사회학적 방식으로 ‘개인’에 접근한다. ‘우리는 왜 개인이 아닌가’라는 책의 부제가 말하듯,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진 게 아니라 ‘사회적 힘들’(Social Forces)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게 기본적인 이 책의 바탕이다. 심지어 사적이며 주관적이고 은밀한 것으로 우리가 여기는 생각(thinking)도 사회적 힘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개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부흥한 데 따른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과정에서 사유재산 개념에 의존하며 이윤추구가 체제를 작동하는 엔진이다. 대다수 개인은 노동력을 팔아 일자리를 구하고, 그러지 못하면 생존은 개인의 책임이 된다. 대다수 자본주의 경제학자가 옹호하는 철학은 모든 개인이 시장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모든 사람이 이득을 본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더 많은 개인이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홀로 남겨질수록 모두를 위해 더 좋은 경제가 되리라는 믿음은 신자유주의에서 거의 구현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개인주의 신화에 헌신하며 개인의 문제가 대개 사회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개인주의 신화는 사회적 고립을 정당화하고, 점점 더 소외된 생활방식에 기여하게 한다. 미국에서 가족과의 저녁 식사부터 사교, 운동모임에 이르기까지 지난 30년간 많게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볼링 클럽도 1970년대 이후 40%가 줄었지만, 볼링을 하는 사람의 숫자는 늘었다. 혼자 볼링을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났다. 우리 사회의 ‘혼밥’ ‘혼술’을 연상시킨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계층구조는 더욱 공고하게 굳어졌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이와 괴리돼 있다. 2005년 뉴욕타임스 조사에 따르면,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는 점이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꼽는 미국인은 11%에 불과했다. 미국인 63%는 ‘출세하지 못하는 흑인은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데 동의한다. 개인이 문제를 만나면 ‘개인의 책임’ 하에 ‘심리학 치료’나 ‘개인의 기량 향상’을 찾거나 강요당할 뿐이다.

한때 자유와 평등의 빛처럼 여겨졌던 개인주의는 이제 어두운 면을 더 드러낸다. 기업과 금융의 리더들이 급진적인 개인주의 신화를 이용해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한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사람들의 ‘자유’는 개인이 쇼핑하고 소비할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의미할 정도로 의미가 퇴색했다. 기껏 자기중심주의나 이기주의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저자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첫발은 ‘사회적 힘’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는 것”이라며 “협력과 정의를 강화하는 힘에서 우리의 존엄성과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적 힘을 걸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기조는 “‘나’에서 ‘우리’로, 집단행동의 힘을 깨닫는 것”이라며 “사회학은 그것을 구분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376쪽, 1만88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